韓 4963억 달러·대만 4166억 달러·日 3844억 달러
집적회로 수출 韓 1490억 달러, 日의 7배… 장비 경쟁력만으론 역부족
한국과 대만의 수출액이 올해 상반기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AI)용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면서 첨단 반도체 생산 능력을 갖춘 한국과 대만의 수출이 나란히 50% 가까이 급증한 결과다. 일본도 반도체 제조장비와 소재를 앞세워 AI 특수의 혜택을 받았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첨단 반도체 시장에서는 한국과 대만에 뒤처진 모습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한·일·대만의 무역통계에 일본무역진흥기구(제트로)와 유엔 무역통계 데이터베이스 'UN 컴트레이드' 자료를 더해 달러로 환산·비교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7일 보도했다. 분석에는 미쓰비시UFJ리서치앤드컨설팅이 협력했다.
분석 결과, 올해 1~6월 한국의 수출액은 4963억 달러(약 703조원)로 일본의 3844억 달러보다 1119억 달러 많았다. 대만도 4166억 달러를 수출해 일본을 322억 달러 앞섰다. 일본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수출이 10% 가까이 늘었지만, 한국과 대만은 나란히 50%에 가까운 증가율을 기록하며 일본을 추월했다.
한국과 대만의 수출을 끌어올린 것은 AI용 반도체였다. 대만에서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TSMC가 첨단 반도체 생산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I 가속기용 메모리 등 첨단 반도체를 공급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집적회로(반도체) 수출액은 한국이 1490억 달러, 대만이 1332억 달러에 달했다. 양국 모두 전체 수출에서 집적회로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30%였다. 특히 한국은 올해 상반기 집적회로 수출만으로 지난해 연간 실적을 넘어섰다. 반면 일본의 집적회로 수출액은 212억 달러로 한국의 7분의 1 수준에 그쳤고,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약 5%에 불과했다.
다만 일본 반도체 산업에도 여전히 강점은 있다. 도쿄일렉트론과 어드반테스트, 레이저테크 등 일본 기업들은 반도체 제조 장비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은 세계 각국의 반도체 생산 시설 증설에 장비와 소재를 공급하며 AI 투자 확대의 혜택을 누려왔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일본의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액은 150억 달러로 한국의 52억 달러와 대만의 35억 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그러나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부가 가치도 높은 최종 제품, 즉 첨단 반도체를 직접 만드는 한국·대만과의 격차는 좁히지 못했다. 세계가 원하는 완제품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는 일본 제조업의 현주소인 셈이다.
마루야마 겐타 미쓰비시UFJ리서치앤드컨설팅 연구원은 "세계적으로 반도체 수출이 늘더라도 부품·소재와 장비의 수출액은 급격히 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기록적인 엔저로 일본의 수출액이 달러 기준으로 작게 잡힌 측면도 있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엔화 기준 수출액이 같아도 달러 환산액은 줄어든다. 다만 원화와 대만달러 역시 달러 대비 약세를 보여 한국·대만의 일본 추월을 환율 요인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닛케이는 짚었다.
이번 결과를 AI 특수에 따른 일시적인 순위 변화로만 보기는 어렵다. 가격 변동의 영향을 제외한 실제 수출 물량의 변화를 보여주는 일본의 수출수량지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정점을 찍은 뒤 최근까지 제자리걸음이다.
세계 수출 순위도 장기적으로 밀렸다. 제트로에 따르면 일본은 1970~1990년대 미국과 독일에 이어 세계 3위 수출국이었지만, 2000년대 중국에 밀려 4위로 내려갔다. 이후 무역 거점이 몰린 네덜란드와 홍콩에도 뒤져 지난해에는 6위까지 떨어졌다.
일본은 2차 대전 후 섬유와 철강, 자동차, 전자제품 등 세계적으로 수요가 커지는 상품을 잇달아 수출하며 제조업 중심의 무역 강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 이후에는 세계 시장을 이끌 새로운 주력 수출품을 찾지 못했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첨단 AI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동안 한국과 대만은 반도체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수출을 크게 늘렸다. 일본이 장비와 소재의 경쟁력을 넘어 새로운 주력 수출품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한국·대만과의 수출 격차는 AI 특수가 잦아든 뒤에도 이어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