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없다"더니…설립 57일된 법인에 10년 임차권 준 '깜깜이' 계약
자체 정관상 필수인 '이사회 의사록' 미제출…유착 의혹 해명 못 해
과거 국토부 감사서도 수의계약 적발…상습적 '깜깜이' 특혜 의혹도
[편집자주]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합니다. 아주경제 탐사보도팀 '발품'은 20~30대 기자들이 현장으로 들어가 사람을 만나고 목소리를 기록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경제·산업·정치·사회·부동산·문화를 가리지 않고, 삶과 맞닿은 모든 현장을 추적합니다. 문제는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고 끝까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발품'은 보이지 않던 것을 드러내고,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끝까지 전하기 위해 한 번 더 확인하고 집요하게 묻겠습니다. 독자가 미처 닿지 못한 곳까지 대신 걸어가겠습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한국건설기술인협회 본관 전경[사진=방효정 기자]
설립된 지 57일, 자본금 1000만원에 불과했던 신생 법인 소버린스테이트는 2014년 4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건설기술인협회 별관의 10년 장기 임차인으로 선정됐다. 이 계약을 발판 삼아 협회 건물을 재임대(전대)한 소버린 대표 최모씨는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 약 100억원을 소진한 뒤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대규모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협회는 사건의 발단이 된 초기 임대차 계약 과정을 명확히 소명하지 않아 의문을 남긴다.
5일 아주경제 탐사보도팀의 취재를 종합하면 세입자 측은 전대차 사기 민사 소송 진행 과정에서 △협회의 임차인 선정 절차와 관련된 공고문 △심사 기준 △이사회 의사록 일체에 대해 법원에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이 이를 기각하면서 유착 의혹을 밝힐 핵심 고리인 업체 선정 과정은 끝내 재판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양측은 기각 경위를 두고 엇갈린 주장을 하고 있다. 세입자 측은 협회가 "심사 절차 자체가 없었고 관련 문서나 의사록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해 존재 증명 자체가 막혔다는 입장이다. 반면 협회 관계자는 "전대차 계약 분쟁인 이 사건과 상관없다는 이유로 기각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건설기술인협회 정관 중 이사회 의결 및 회의록 작성·비치와 관련된 39조·43조·72조 [사진=한국건설기술인협회 홈페이지]
문제는 세입자 측의 주장대로 협회가 법정에서 '관련 문서의 부재'를 주장한 것이 사실이라면 협회 자체 정관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것이다. 협회 정관 제39조 제6호에 따르면 '중요한 재산의 취득, 처분 및 임대차에 관한 사항'은 반드시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또 정관 제43조와 제72조는 이사회 회의록에 의결사항 등을 기재해 비치 및 보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관련 문서나 의사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정관상 필수 절차인 이사회 의결을 건너뛰었거나 회의록 관리 의무를 저버린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실제 나라장터와 협회 홈페이지에는 같은 시기 발주된 다른 용역이나 별관 관리 계약 공고는 모두 남아있다. 다만 전세사기가 발생한 해당 임대차 공고는 확인되지 않았다.
협회 관계자는 탐사보도팀과 만나 이에 대해 "(소버린은) 경쟁입찰을 거쳐 선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담당자들이 바뀌었고 오래된 일이라 확인이 필요하다"며 "입찰을 통해 선정됐다는 사실만 알 뿐 입찰 구조는 살펴봐야 한다"면서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그러면서 "보존 기간이 지나 서류가 폐기됐을 가능성도 있다"며 경쟁입찰을 거쳤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단 한 건도 확인해 주지 않았다.
이에 설립 두 달 미만의 신생 업체가 대형 건물의 10년 임차권을 획득한 것에 대해 협회의 특혜 제공 의혹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이는 유사 전대차 사기 사건인 '휘문고 재단 사건'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당시 재단 측은 미리 업체를 내정한 후 법인을 세운 뒤 계약을 맺었고, 추후 재판을 통해 이사장과 업체 대표 간 유착 및 보증금 상납 구조가 확인된 바 있다.
계약 체결 당시 협회 내부 정황도 의문점을 더한다. 당시 김정중 협회장은 2013년 첫 직선제로 취임한 뒤 별관 신축을 핵심 사업으로 추진했다. 재임 기간 중 그는 당시 협회 감사였던 심모씨에게 인사 및 수익사업 부당 개입, 별관 신축 이권 개입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사건은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지만, 이후에도 고발전은 이어졌다.

국토교통부가 2016년 5월 공개한 ‘한국건설기술인협회 종합감사’ 자체감사 처분요구서 중 수의계약에 관해 지적한 부분[사진=국토교통부 홈페이지]
감독 기관인 국토교통부 감사에서도 협회의 수의계약 관행에 대한 지적이 잇따른 바 있다. 2016년 종합감사에서 국토부는 협회가 2014년 서울 강남구 건물 임대차 계약 체결 당시 2개 업체로부터 입점 제안을 받았음에도 수의계약을 맺은 점을 문제 삼았다. 협회는 특정 업체에만 임차 의향을 확인한 뒤 수의계약 대상이 아님에도 경쟁입찰을 거치지 않아 '주의' 처분을 받았다. 2021년 감사에서도 일반 경쟁입찰을 우선 검토해야 함에도 이사회 의결만을 근거로 이를 생략한 채 수의계약을 진행했다. 따라서 별관 임대차 계약 역시 공개입찰 기록이 없다면, 불투명한 수의계약으로 처리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협회 측은 탐사보도팀의 취재가 시작되자 "직접 만나 자료를 설명하고 협회의 입장도 이야기하겠다"고 했지만, 유의미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관련된 질의에도 "민사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상세한 답변을 내놓기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울러 "소버린 측의 사기로 협회 역시 상당한 피해를 입은 만큼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입장만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