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쫓겨난 자리엔 새 세입자… "협회는 공공기관" 말은 그대로
협회 별관만이 아니었다… 신관까지 뻗은 통임대, 유착 의혹 제기돼
[편집자주]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합니다. 아주경제 탐사보도팀 '발품'은 20~30대 기자들이 현장으로 들어가 사람을 만나고 목소리를 기록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경제·산업·정치·사회·부동산·문화를 가리지 않고, 삶과 맞닿은 모든 현장을 추적합니다. 문제는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고 끝까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발품'은 보이지 않던 것을 드러내고,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끝까지 전하기 위해 한 번 더 확인하고 집요하게 묻겠습니다. 독자가 미처 닿지 못한 곳까지 대신 걸어가겠습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건설기술인협회(이하 협회) 별관 오피스텔에서 자본금 1000만원짜리 임대 업체 소버린스테이트(이하 소버린)가 건물을 통째로 임차한 뒤 세입자 28가구와 재임대(전대차) 계약을 맺고 약 100억원의 보증금을 챙겼다. 세입자들은 국토교통부 소관 법정단체라는 협회의 공신력을 믿고 계약했지만, 소버린이 임대료를 연체하며 계약이 해지되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렸다. 1심 법원은 협회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현재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피해자들이 거리로 내몰렸던 그 과정은 이랬다. 2024년 1월, 협회는 입주자들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제기한 뒤 법원 집행관을 동원해 강제집행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 입주민의 집 한 켠에는 "부동산의 점유를 해제하고 집행관이 보관하되, 현상을 변경하지 않는 조건으로 채무자가 사용하며 타인에게 점유를 이전할 수 없다"는 내용의 고시장이 붙었다. 이에 더해 협회는 퇴거 시한 이후 월 300만원에 달하는 사용료를 청구했다.
피해 입주민들의 삶은 무너졌다. 피해자 A씨는 "갈 곳이 없어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지만, 전 재산이 사라진 현실은 사람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며 "아이까지 찾아왔지만 미래를 꿈꾸기는커녕 참담한 마음뿐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보증금만 있었어도 청약이나 임대주택 등 다른 기회를 노려볼 수 있었을 텐데, 목돈이 통째로 날아가며 모든 선택지가 사라졌다"면서 "좁은 부모님 집에서 언제까지 온 가족이 신세를 져야 할지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피해자 B씨는 전세사기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 속 완치 판정을 받았던 병이 재발했다. 소송이 진행되는 중에 병세가 악화된 B씨는 결국 2024년 세상을 떠났고, 현재는 남편이 고인이 된 아내를 대신해 법정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피해자 C씨는 어머니가 오랜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가 유산으로 남긴 전 재산인 보증금을 들고 이곳에 입주했다. 함께 살던 집에서 계속 지내는 것이 정서적으로 힘들어 치안이 좋고 안전하다고 알려진 해당 건물을 찾았으나, 입주한 지 불과 한 달 반 만에 전세사기 피해 사실을 알게 됐다. C씨는 "어머니가 남겨주신 소중한 유산이자 내 전 재산을 모두 잃을 수도 있다는 현실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협회 별관 오피스텔은 신규 임차인을 받아 정상 임대 운영 중이다. 피해 입주민들이 거주지를 옮겨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는 동안 해당 세대들은 기존 빌트인 가전과 옵션이 유지된 채 새로운 월세 계약으로 재편됐다.
현재 협회 건물의 관리를 맡고 있는 젠스타메이트는 2025년 1월 자산관리(PM) 용역 업체로 선정됐다. 조달청 나라장터에 따르면 협회는 2024년 12월 31일 '건설기술인회관 자산관리(PM) 용역' 입찰 공고를 게시했고, 제한경쟁 입찰 방식을 거쳐 젠스타메이트를 최종 선정했다.
아주경제 탐사보도팀은 지난 23일 신규 임차인으로 현 관리업체인 젠스타메이트 측에 임대 상담을 진행했다. 상담 과정에서 젠스타메이트 관계자는 해당 건물의 과거 전세사기 및 강제집행 이력에 대해 "이전 업체의 문제일 뿐 현재는 정리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이는 과거 소버린이 자신들을 "협회가 직접 설립한 산하기관"이라며 임차인들을 속였던 방식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젠스타메이트 측은 "자신들은 협회로부터 건물 계약 및 관리를 조율하도록 위탁받은 자산관리업체(PM)"라며 역할을 명확히 하며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계약서 검토나 중간 조율만 우리가 할 뿐, 실제 계약은 협회와 직접 체결하고 인감도장 역시 협회 도장을 찍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공공'이란 단어를 활용하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계자는 "협회가 공공기관이어서 보증금 문제는 없다"며 공신력을 앞세웠다. 실제 공공기관이 아님에도 협회의 명칭이 주는 신뢰감을 활용해 임차인을 안심시킨 것이다. 정식 위탁 관리업체라는 구조적 차이는 있지만 공신력을 안전지대로 삼아 위험 요소를 축소하려는 태도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었다.
아주경제 탐사보도팀은 지난 24일 강남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에도 협회 별관 오피스텔 임대 상담을 받았다. 중개사는 해당 오피스텔이 '협회 건물'이며 계약의 실질 주체가 사단법인 형태의 한국건설기술인협회임을 언급했다. 그는 "법인은 본인들이 직접 임대를 못 한다"며 "협회가 임대 업무를 외주업체에 위임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협회는 1987년 사단법인으로 출발 후 1995년 건설기술관리법(현 건설기술진흥법)에 의한 법정단체로 전환된 곳으로, 단순 민간 임의단체와는 성격이 다르다. 또한 한국건설기술인협회 정관 제5조 12항에 따르면 '협회재산 및 기타 부대시설의 임대 및 운영·관리'를 협회의 사업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어, 협회가 직접 임대차 계약의 당사자로 나서는 것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
이후 중개사는 과거 소버린의 전세사기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이전에 보증금 관련 사건이 있었다"며 "당시 임대를 맡았던 업체가 이후 영업을 중단했고 그로 인해 여러 세대가 공실로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 문제는 해결됐다"며 "현재는 보증금을 보호받을 수 있는 부분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과거 소버린과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세입자들에게 강조했던 것과는 달랐다. 당시 소버린은 협회와 특수관계에 있다고 세입자들을 안심시켰다. 중개업자들은 세입자들에게 전대차라는 계약의 성격 자체를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 이 두 가지가 결합하면서 세입자들은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 채 계약을 맺었다. 다만 현재 협회 별관 오피스텔 상담 과정에서는 계약 주체가 누구인지 등 계약 구조에 대한 설명은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중간관리 업체와 부동산이 소버린과의 전세사기 관련 사고를 먼저 언급하면서 해당 건물의 이력까지 설명하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사실관계 차원에서 여전히 짚어야 할 부분은 남아 있다. 협회는 공공기관이 아님에도 "공공기관이라 보증금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 반복됐고, 협회가 직접 임대차계약의 당사자가 될 수 있음에도 "법인은 직접 임대를 못 한다"는 설명 역시 사실과 어긋난다. 안전성을 뒷받침하는 근거 자체가 부정확하다는 점에서, 세입자 입장에서 계약 구조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정보 비대칭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셈이다.
한편 소버린의 임대사업 범위는 별관에 국한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아주경제 탐사보도팀이 입수한 공문에 따르면 협회는 당시 입주 업체에 '건설기술인회관 신관 전대차 계약 승계 알림'을 발송했다. 해당 문서는 "우리협회와 소버린스테이트(전대인)의 임대차계약 해지에 따라 귀 사와 우리협회 간 전대차계약 인수 약정을 통해 전대차 계약을 승계하고자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소버린이 별관뿐 아니라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협회 신관에서도 전대인 지위로 임대사업을 운영해왔음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실제로 복수의 제보자는 신관 역시 별관과 마찬가지로 소버린를 통한 임대 구조로 운영돼왔다며, 두 건물 간 연관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이번에 확인된 문서는 이 같은 제보 내용에 신빙성을 더하는 근거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자본금 1000만원 규모의 업체에 별관은 물론 신관까지 대형 통임대 사업권을 넘겼던 과거의 불투명한 임대 관리 체계와 피해 발생 경위에 대해 피해 입주민들은 지속적으로 협회와 소버린의 유착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같은 의혹과 과거 계약 과정, 현재 임대 현황 등에 대해 협회 관계자는 "현재 민·형사상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인 답변이 난감하다"며 "재판 및 법적 절차가 끝난 뒤에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다만 법원 집행관의 강제집행에 대해서는 "부동산점유이전금지가처분에 따른 적법한 필요 조치"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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