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현의 AI 지표] 中 공세에 '증류 규제 반대' 동참 거부한 오픈AI·앤트로픽...韓은 자체검열에 발목

  • 엔비디아·MS·메타 등 공동성명...폐쇄형 선두기업과 노선 갈려

  • 문샷 '키미 K3' 증류 의혹發 논쟁...美 재무장관은 제재 시사

  • 韓은 독파모 파생 논란 이후 증류 금기어로

17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회의WAIC에서 사람들이 자사의 키미 K3Kimi K3 AI 모델을 홍보하는 문샷Moonshot 부스 앞을 지나가고 있다사진로이터 연합뉴스
17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회의(WAIC)에서 사람들이 자사의 '키미 K3(Kimi K3)' AI 모델을 홍보하는 문샷(Moonshot) 부스 앞을 지나가고 있다.[사진=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빅테크 25개사가 AI 모델 '증류(distillation)' 기술에 대한 규제 반대 성명을 냈지만, 오픈AI와 앤트로픽 등 선두주자들은 서명에서 빠졌다. 중국의 증류 공세를 놓고 미국 AI 업계가 개방과 규제로 갈라선 가운데, 한국은 증류 도입 자체를 꺼리는 자체검열 분위기가 굳어지며 양쪽 어디에도 서지 못하는 모습이다.
 
26일 IT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메타·팔란티어·델테크놀로지스·IBM·허깅페이스·미스트랄·앤드리슨호로위츠 등 25개 기업은 지난 24일(현지시간) 공동 서한을 통해 "오픈웨이트(가중치 공개형) AI 모델에 대한 성급한 제한은 경쟁을 위축시키거나 혁신을 해외로 내몰 수 있다"고 밝혔다.
 
증류는 거대 모델의 출력값으로 작고 가벼운 모델을 학습시키는 기술이다. 이들은 증류를 "AI 혁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널리 쓰이는 기법"으로 규정하고, 불법적 증류 우려는 포괄적 규제가 아닌 '표적화된 법적·상업적 틀'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과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도 개인 소셜미디어에 서한을 공유하며 힘을 실었다.
 
서한은 크게 세 가지를 주장한다. △오픈웨이트 모델이 미국의 AI 주도권 유지에 필수적이고 △다수 연구자가 검증할 수 있어 폐쇄형 모델보다 오히려 안전하며 △증류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시대부터 이어져 온 표준적 관행이라는 것이다.
 
서명에 참여한 클라우드 기업 박스(Box)의 애런 레비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이든 중국이든 혁신이 많을수록 AI는 더 저렴하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반면 오픈AI, 앤트로픽, 구글, xAI는 서한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폐쇄형 모델을 주력으로 삼는 선두 기업들과 오픈웨이트 생태계에 이해관계가 걸린 인프라·응용 기업들 사이의 노선 차이가 드러났다는 평가다. 특히 오픈AI와 앤트로픽은 서비스 약관으로 자사 모델 증류를 금지해온 당사자다.
 
성명의 배경에는 중국 문샷AI의 '키미 K3' 쇼크가 있다. 지난 16일 공개된 키미 K3가 미국 최상위 모델에 버금가는 성능을 보이자, 마이클 크라티오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은 22일 문샷AI가 앤트로픽의 '클로드 페이블'을 증류해 키미 K3를 개발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크라티오스 실장은 문샷AI가 탐지를 피하려 접속 경로를 전환하는 정교한 내부 플랫폼을 구축했다고 지적했고, 수출이 금지된 엔비디아 GB300 서버를 태국을 경유해 확보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도 불법 증류가 확인되면 제재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중국발 증류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앤트로픽은 지난 2월24일 딥시크·문샷AI·미니맥스 등 중국 AI 3개사가 위장 계정 약 2만4000개를 동원해 클로드로부터 1600만건 이상의 결과물을 수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중 미니맥스가 약 1300만건으로 가장 많은 트래픽을 유발했고, 새 클로드 모델이 출시되면 24시간 내 대응 패턴을 바꾸는 정황도 포착됐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증류를 활용해 압도적 자본력 격차를 우회하고 있다는 게 미국 업계의 시각이다.
 
한국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 사업 과정에서 불거진 도용·파생 논란 이후 오히려 증류 도입을 꺼리는 자체검열 기류가 감지된다.
 
지난 1월15일 과기정통부는 독파모 1차 단계평가에서 네이버클라우드·NC AI 컨소시엄이 탈락했다고 밝혔다. 네이버클라우드가 개발한 '하이퍼클로바X 시드 32B 싱크' 모델의 비전 인코더 가중치가 알리바바 '큐웬 2.4' 계열 모델과 유사도가 높다는 지적이 결정적이었다. 업스테이지도 '솔라 오픈 100B' 일부가 중국 지푸AI 'GLM-4.5-에어'와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가,
 
의혹 제기자가 사흘 뒤 근거 부족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두 사례 모두 출력값을 학습에 쓰는 증류라기보다 가중치 유사성에 따른 도용·파생 논란에 가깝지만,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는 증류 자체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확산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문제는 한국의 AI 개발 자본력이 미국·중국에 크게 뒤처진다는 점이다. 정부 예산과 기업 투자를 합쳐도 글로벌 빅테크 개별 기업의 투자 규모에 못 미쳐 증류를 통한 효율화가 필요하지만, 국내 기업 간 경쟁 구도에서는 객관적 성능보다 상대보다 우위를 점하는 것이 우선시돼 경쟁사 간 신고로 이어질 수 있는 증류 도입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천문학적 자본을 투입하는 미국, 국가 주도로 기업 협력을 이끌어내는 중국과 달리 국내 기업 간 경쟁이 오히려 AI 모델 수준을 끌어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독파모 2차 단계평가는 오는 8월초 시작되며, SK텔레콤·LG AI연구원·업스테이지·모티프테크놀로지 4개 컨소시엄이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