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총체적 부실' 드러나…합수본, 투표용지 축소 인쇄 경위 추적

  • "송파 무번호 용지 1만7000매 필요했으나 2000매 배부"

  • 회의록 통해 의사결정 과정 규명 주력…실무진 소환 예정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둘러싼 논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총체적 부실 문제로 확산하고 있다. 선관위 자체 진상조사에서 무번호 투표용지 부족과 보고 체계 붕괴, 현장 대응 실패 등이 확인된 가운데 검경 합동수사본부도 압수물 분석에 착수하며 투표용지 축소 인쇄 결정 과정 전반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며 합수본은 전날 중앙선관위와 서울시선관위, 송파·강남·서초·광진·동작구선관위 등 7곳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자료를 분석 중이다. 합수본은 투표용지 인쇄 계획안과 예산안, 투표록, 전자파일, 회의록 등을 분류하며 선거 준비 과정과 당일 대응 체계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번 압수수색영장에는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과 허철훈 전 사무총장, 각 지역 선관위원장과 사무국장 등 10여 명이 공직선거법 위반, 직무유기, 업무상 횡령·배임 등 혐의 피의자로 적시됐다.
 
무번호 투표용지 추가 물량 요청에 10곳 이상 투표소 미대응
12일 중앙선관위 과천청사에서 열린 투표용지 부족사태 진상규명위원회 제3차 위원회의에 조현욱 위원장이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2일 중앙선관위 과천청사에서 열린 '투표용지 부족사태 진상규명위원회 제3차 위원회의'에 조현욱 위원장이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선관위 자체 조사에서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된 여러 문제점이 확인됐다.

조현욱 중앙선관위 투표용지 부족 사태 진상규명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사태를 "총체적 부실"이라고 평가했다.

진상규명위원회에 따르면 서울시선관위는 내부 지침상 자치구 선거인 수의 3% 내외를 기준으로 준비해야 하는 무번호 투표용지를 각 자치구에 일괄적으로 2000매씩 배부했다.

송파구의 경우 선거인 수가 56만4438명으로 규정에 따라 약 1만7000매의 무번호 투표용지가 필요했지만, 실제 배부된 물량은 2000매에 그쳤다.

투표 당일 대응도 혼선을 빚었다. 송파구선관위는 3일 오전 11시 50분께 투표율이 예상보다 높다며 추가 일련번호 부여를 요청했다. 서울시선관위는 정오 무렵부터 무번호 투표용지에 일련번호를 부여하기 시작했는데, 여러 투표소에서 동시에 추가 물량을 요청하면서 작업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같은 날 오후 5시 5분께부터는 일련번호가 없는 무번호 투표용지를 현장에 보내고 투표관리관 등이 직접 번호를 적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후 오후 5시 9분께에는 무번호 투표용지마저 거의 소진돼 10곳이 넘는 투표소의 요청에 대응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진상규명위원회는 투표용지 이송 과정에서 규정상 작성해야 하는 인계·인수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서울시선관위와 중앙선관위에 대한 보고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상급위원회의 현장 지휘권이 사실상 작동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조 위원장은 다만 "현재까지 고의성은 확인되지 않는다"며 "선관위가 연구용역과 태스크포스(TF) 운영 등을 통해 대책을 마련하려 한 정황은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선관위, 유권자 수 110% 용지 예산 확보하고도 50% 인쇄
6·3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들여다보고 있는 검경 합동수사본부 관계자들이 지난 11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들고 건물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6·3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들여다보고 있는 검경 합동수사본부 관계자들이 지난 11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들고 건물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동취재단]

합수본은 선관위의 의사결정 과정 규명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선거 준비 과정에서 작성된 투표용지 인쇄 계획서와 회의록, 예산안, 지방선거 관련 전자파일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투표용지 축소 인쇄를 결정한 회의록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당시 결정 과정이 수사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수사팀은 선관위가 유권자 수의 110%에 해당하는 투표용지 예산을 확보하고도 실제 인쇄 물량을 50% 수준으로 줄인 경위를 집중적으로 확인할 방침이다.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는지도 들여다보고 있다.

선거 당일 투표용지 보관 장소와 수량, 잔여 매수 등이 기록된 투표록 역시 주요 분석 대상이다. 합수본은 이를 통해 실제 투표용지 배부 규모와 부족 규모, 선관위의 대응 과정을 재구성할 계획이다.

중앙선관위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도 이틀째 이어지고 있다. 합수본은 방대한 서버 전자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다운로드 작업을 진행 중이며, 분석 결과에 따라 추가 압수수색과 입건 대상 확대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에 설치된 합수본은 다음 주까지 내부망 구축과 자료 이관 작업을 마친 뒤 각급 선관위 실무진에 대한 소환 조사에도 나설 예정이다.
 
개표 과정 오류도 잇따라 확인…정치권 국정조사 논의도 확산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빚어진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이어진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한 참가자가 태극기를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빚어진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이어진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한 참가자가 태극기를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선관위를 둘러싼 논란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넘어 개표 관리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전북교육감 선거에서 개표 결과 입력 오류가 확인된 데 이어 경기교육감 선거에서도 개표 결과 오입력 사례가 드러났다.

경기도선관위에 따르면 성남시 중원구 금광2동 제3투표소에서는 교육감 선거용 B형 투표용지의 후보 순서를 개표 시스템에 반대로 입력하면서 후보 간 득표수가 뒤바뀌어 공표됐다. 광주시 초월읍에서는 제9투표소 결과를 제2투표소에 잘못 입력한 뒤 수정 과정에서 중복 입력이 발생했다.

전북교육감 선거에서는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1동 투표소의 개표 결과가 잘못 입력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완산구선관위는 개표 과정에서 오류를 확인하고도 수일이 지난 뒤 상급기관에 보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2년 전 제22대 총선 당시 경기 수원정 선거구에서도 개표 결과 집계 오류가 있었던 사실도 뒤늦게 알려지면서 선관위의 투·개표 관리 체계 전반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국정조사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차주 국회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요구서를 채택할 방침이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전날 관계장관회의에서 "선관위가 위부터 아래까지 대오각성해야 한다"며 "합수본을 중심으로 최대한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개표소 봉쇄 시위는 일주일 넘게 계속되고 있다. 경찰은 이번 주말 시위 규모 확대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면서 현장 관리와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