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110달러 넘나드는 국제유가…기름값 잡은 최고가격제, 출구전략 고심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중동 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세가 재개되면서 7개월 넘게 시행 중인 석유 최고가격제의 출구전략을 둘러싼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고가격제가 국내 기름값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지만 국제유가가 다시 배럴당 110달러를 넘어서면서 제도 종료 시점을 가늠하기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25일 한국석유공사 등에 따르면 지난 23일 글로벌 원유 가격의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선물가격은 배럴당 116.72달러로 전 거래일 대비 3.14% 상승했다. 지난 4월 29일 이후 약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103.27달러로 3.8% 올랐다.

국제유가가 다시 급등한 것은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공급 차질 우려 때문이다. 예멘 후티 반군의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 시설 공격과 호르무즈 해협 일대의 해상운송 불안 등이 겹치면서 원유 공급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브렌트유는 한 주 동안 6% 상승했고 WTI도 2.3% 올랐다.

국제유가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10월 3주 국내 보통휘발유 가격은 ℓ당 1856.1원, 경유 가격은 1842.5원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지난 5월 3주차 이후 23주 연속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국내 가격이 안정적인 것은 정부의 석유제품 최고가격제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3월 13일 최고가격제를 도입한 이후 현재까지 11차례 최고가격을 지정하며 국내 기름값 상승을 억제하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지난 17일부터 4주간 적용되는 제11차 석유 최고가격을 기존 수준으로 동결했다. 정유사 공급가격 기준으로 휘발유는 ℓ당 1784원, 경유는 1773원, 등유는 1380원이다. 지난 6월 말 제7차 최고가격을 일제히 150원 인하한 이후 약 4개월 동안 같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최고가격제의 가격 안정 효과는 최근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산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석유 최고가격제의 가격안정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1512개 주유소를 분석한 결과 고급휘발유 대비 보통휘발유의 상대가격은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하락한 것으로 추정됐다.

구체적으로 1차 최고가격 시행 기간에는 L당 45.75원, 2~6차 기간에는 165.51원, 7차 이후에는 239.48원 낮아졌다. 최고가격제가 적용되지 않는 고급휘발유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 보통휘발유의 상대적인 가격 변화를 분석한 결과다.

산업연구원은 최고가격제가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소비자가격 상승을 완충하거나 국제가격 하락분이 국내 판매가격에 반영되는 속도를 높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23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최고가격제와 관련해 "0.6%포인트 인플레를 낮춘 것으로 측정한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최고가격제가 장기화하면서 재정 부담도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정유사 손실보전을 위해 확보·편성한 재원은 올해 목적예비비 4조2000억원과 내년도 예산안 1조4497억원 등 총 5조6497억원에 달한다.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된 금액은 올해 4분기 최고가격제 운영에 따른 손실을 정산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실제 정유사에 지급할 손실보전액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정부는 정유사별 원가와 적정 마진 등을 검증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국내 공급가격을 일정 수준으로 묶어두면 가격 차이를 보전하기 위한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 반대로 최고가격제를 종료하면 그동안 억제됐던 국제가격 상승분이 국내 기름값에 반영되면서 소비자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제시한 최고가격제 종료 검토 조건도 충족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중동 전쟁 종료 △호르무즈 해협 운항 정상화 △국제유가 90달러대 안착 등을 제도 종료 검토를 위한 주요 조건으로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중동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불안도 이어지고 있다. 국제유가 역시 다시 배럴당 110달러를 웃돌면서 최고가격제 종료 시점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최고가격제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신 총재는 "한국의 경우 재정 상태가 비교적 양호해서 조금 더 지속할 여력이 있다"며 "그렇지만 장기적인 제도는 아닌 것 같다"고 우려했다.